[동영상] 고속도로 역사여행 Hi! Story! -영동 고속도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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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박사님과 함께하는 고속도로 역사여행
Hi! Story! - 영동 고속도로 1: 마성 - 양지 - 용인 - 덕평 - 호법
마성ic와 석성산
마성ic는 개통당시 주민보다는 에버랜드(옛 자연농원) 관광객을 위해 설치되었다. 현재 이 일대는 마성터널을 이용해 석성산을 관통하여 영동고속도로를 지나게 된다. 석성산은 해발 472m의 용인시 진산으로 이 일대 초중고등학교의 교가에 으레 등장한다. "석성산 정기받아.. " 로 시작하는 교가는 확인 된 것만 20여곡이 넘는다. 옛날부터 용인사람들은 풍수상 신령스러운 산이라 믿어왔던 증거이다 이 산의 정상에는 조선시대 봉수터가 남아 있다.
용인
용인은 1413년 용구현과 처인현에서 한글자씩 따서 이름지었다. 조선시대에는 '작고 궁핍한 고을' 또는 '경기도에서 가장 다스리기 힘든 고을'이라는 용인을 두고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라고 한다.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서 산다는 말인데, 이는 신라 말의 고승 도선국사가 용인 땅의 형세를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지역 사람뿐 아니라 우리나라 명문세가들이 용인에 많이 묻혀 있다.
양지
양지면은 본래 수주(水州, 현재의 수원)에 속한 양랑촌부곡(陽良村部曲)이었는데 조선시대 정종 원년(1399)부터 양지현이라 하였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지방 관제 개편에 따라 1895년 양지군으로 되었으나 1914년 4월 1일 읍내면, 주동면, 주북면, 주서면 등 4개 면을 합치고 읍내의 끝자인 내자를 합쳐 내사면으로 개정하였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식민통치 시절 명명된 일제식 지명을 정비할 때 옛 양지현의 명칭을 되살려서 양지면이라 하였다.
옛날에 한 원님이 양지면 양지리에 도임하면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산골짜기로 귀양을 보내나." 하고 울면서 들어왔다고 한다. 왜 울었느냐면, 쉬웅목이란 산모퉁이를 돌면 꼬부라진 길이 빼꼼하게 나서 하늘만 보이는 그런 동네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마을을 순행하던 원님은 아담하고 좋은 동네 뒷산에 풍수상 아주 못쓸 바위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해가 지날수록 남자들을 술을 못 먹게 하고 동네에 사고를 일으키게 하는 바위였다.
원님은 바위가 어째서 그런가 하고 살펴본 뒤, 수백 명의 백성들을 시켜 바위를 땅에 묻고 위에 떼를 입힌 다음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옆에 등나무를 심었는데, 등나무가 자라서 바위가 있던 자리를 가리자 마을에 아무런 사고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저렇게 이곳에서 몇 년을 살던 원님은, 백성들이 잘 순응하고 얌전하며, 산골일망정 장작불에 쌀밥을 해서 먹여 주는 기가 막히게 인심 좋은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나라에서 다른 곳으로 부임하라는 공문이 날아왔다. 원님은 "이렇게 좋은 데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어찌 갈꼬." 하면서 떠나기가 원통하여 울고 나갔다. 그리하여 들어올 때 산골이라 울고 들어왔다고 들통곡, 나갈 때는 살기 좋은 곳을 떠나기가 아쉽다고 울면서 나갔다고 날통곡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덕평
덕평은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속한 평야지대에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덕들, 세집매, 행길께 등이 있다. 덕들은 덕평이라고도 하며 큰 들이 있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세집매는 마을에 세 집이 있다 하여 불린 이름이다. 행길께는 마을에 한길이 있다.
덕평은 사실 고속도로휴게소가 유명하다. 상하행선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다. 이곳의 유명한 음식은 소고기국밥인데, 2013년 하루평균 759그릇이 판매되어, 연간 27만 그릇이상의 팔려나갔다고 한다.
호법
이천시 호법면은 구조적으로 주민의 49.3%가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인데, 기능적으로 영동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 역할하고 있다. 역사적ㆍ전통적으로 전국 최고의 밥맛을 자랑하는 이천쌀의 주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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